대학농구 명장, 잔 우든(1910-2010) 잠들다
농구뿐 아니라 스포츠계 최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잔 우든이 4일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6일 탈수증세로 UCLA 로널드 레이건 메디컬센터에 입원했던 전 UCLA 감독 우든이 자연사로 사망했다고 병원측이 밝혔다. 우든은 UCLA 브루인스를 10차례 우승으로 이끌며 대학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너스티를 구축해 유명세를 얻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는 7년 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도 남겼다. 27년 동안 UCLA 지휘봉을 잡으며 통산 620승을 쌓아올렸고 이동안 88연승도 작성했다. 빌 월튼 커림 압둘 자바 모두 그의 손에서 배출된 수퍼스타들이다. 우든은 농구감독에 앞서 교육자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가 쓴 저서 '성공의 피라미드'는 스포츠뿐 아니라 비즈니스 업계의 교과서로도 통한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됐다. 지난 2008년 인터뷰 때 그는 장수의 비결에 대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인생에는 당연히 굴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정점에 이르렀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고 최저점에 있다고 우울해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세상을 떠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나'는 질문에 "잘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스포츠계의 대스타였음에도 근면하고 겸손한 생활을 유지했다. 나이키가 거액계약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에게 솔직한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남을 도와라. 하루하루 매스터피스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우애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라. 좋은 책에 파묻혀라. 특히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한다. 삶을 살면서 복받은 것에 매일 감사하고 기도하라"라고 말했다. 본지에서는 박병기 전 중앙일보 기자가 1995년 한인언론으로 유일하게 그의 집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박 기자는 "그런 엄청난 성공을 거뒀음에도 너무나 소박하게 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우든은 1910년 10월14일 인디애나주 마틴스빌에서 태어났다. 농구보다는 야구를 더 좋아한 우든이었지만 집 근처에 농구 림이 있어 농구에 푹 빠지게 됐다. 현역선수 시절에도 그는 최고였다. 1927년 마틴스 고교를 인디애나주 우승으로 이끌었고 퍼듀 대학에서 1930년부터 32년까지 올아메리칸에 선정됐다. 4학년 때는 퍼듀의 전국 우승을 이끌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우든은 UCLA 지휘봉을 잡으며 3만5천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우든의 제자들은 그가 무엇보다 기초와 기본을 중시한 인물이었다고 설명한다. 선수들에게 양말 신는 법부터 운동화 신는 법까지 하나하나 섬세하게 가르쳤고 이를 실행하게 만들었다. 또 히피문화가 대학가를 몰아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선수들에게 머리를 항상 단정히 하고 수염을 깎게 했다. 그는 "평판보다는 자신의 캐릭터를 쌓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라"고 가르쳤다. 압둘자바는 "그는 감독보다는 부모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타적이었지만 규율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선수나 상대감독에게 한 번도 욕설을 한 적이 없었으나 심판을 향해서는 불만을 여러차례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든은 켄터키를 92-85로 꺾고 통산 10번째 우승을 거머쥔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우승 직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기자 200명이 그에게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던 일화도 있다. 우든은 자서전에서 198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해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원래 고등학교 교사였던 우든은 우연찮게 UCLA 감독으로 임명됐다. 미네소타 대학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으나 학교 측에서 이후 연락이 없었다. 결국 UCLA에서 연락이 왔고 LA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미네소타 관계자들이 "눈보라가 몰아쳐 전화선에 이상이 있었다"고 해명했고 우든도 미네소타에 가고 싶어했으나 UCLA에 이미 언약을 했다며 거절했다. 우든이 이끈 UCLA는 파죽지세를 달렸다. 당시 서부 팀들은 느리고 셋업 공격을 좋아했지만 우든은 속공 위주의 빠른 팀을 만들었다. 또 풀코트 프레스를 선보여 대학농구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가 첫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16시즌이 걸렸다. 그가 가르친 선수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프로농구에 진출하지 않은 이들도 변호사 의사 목사 공무원 등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원이 됐다. 그는 농구감독으로 쌓은 기록보다 이 점이 더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원용석 기자